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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 幻 (sey)

가을의 인사 (물향기 수목원)

# intro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아, 가을인가- 라고 한 번 생각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 무더운 8 월에 그럴리가 없는데.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가을 하늘을 배회하고 있었다.
여름날, 불현듯 찾아온 가을을 맞이하러.

...오랜만이야.


# 물향기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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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초점이 어긋난 게 더 좋아.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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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하늘에게도 거울이 필요하다면, 호수를 바라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호수가 하늘을 다 담을 수는 없겠지.

아니, 거울 같은게 아니라.. 어쩌면, 짝사랑일까나.
모든 것을 안아 줄 수 없기에, 그저 닮아가며 바라만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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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풀도 마찬가지.
바람에 흔들리는게 좋아.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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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비는 언제나 함께다.
서로 주고 받기 때문이라는 얘기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나는, 그저 그 둘이 함께여서 더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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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느사이엔가 먼 곳을 보지 않게 됐다.
주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쁘니까.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먼 곳을 본다는 것은 분명 이질적이다.
자신의 시계에 들어오는 풍경을 그저 받아들일 뿐,
그곳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실감이 없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바라봐주지 않고,
분명 보이는데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감.
만약 그게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무척 슬퍼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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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바라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게 궁금해서 나도 꽃과 높이를 맞추기로 했다.
그렇다고 벌러덩 누울 수는 없어서 카메라만 눕혀서 촬영했다.
이런걸 '노파인더샷'이라고 부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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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게 줄지어 심어져있는 것 같은 나무들은 사실 사이가 나쁘다.
이건, 마치 편 가르기 같잖아.

나야 편하게 중앙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갈라져야만 했던 나무들의 슬픔은 누가 알아줄까.
...이거야말로 지나친 망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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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오산대 (물향기 수목원) 역에는 하늘이 갇혀 있었다.
아니, 갇혀있는건 언제나 우리들이다.
창살만 보고 스스로가 밖에 있다고 착각할 뿐.

그렇다면 죄명은 착각, 벌은 살아가는 괴로움..인걸까나.



# ou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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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즉흥적이었던 가을 맞이 산책은 끝.
푸른 하늘에 이끌려 멋대로 카메라를 집어들고 집을 나섰지만,
역시 아직 여름은 여름. 덥다.

하지만 가을 내음이 났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리움으로 가득한 가을 내음.

사실 난 그런 가을을 기다리면서도, 싫어한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매번 바라보면서도 애써 눈을 돌린다.

그래서 오늘도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가을과 함께, 기억 속 누군가가 떠오르기 전에.


with Canon EOS 400D + TAMRON SP AF 17-50mm F2.8 XR Di II LD (A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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